본문 바로가기

네가죽어(키미가시네)

[아리나오] 감기

* 본편 2장 후편 스포가 살짝 있습니다
*CP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던 데스 게임에서 전원이 무사히 탈출한 뒤 시간이 꽤 흘렀다. 모든 오해들은 잘 풀렸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오 역시 존경하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완성 해내고 집에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할 게 없어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아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요즘 작곡 공부를 하고 있는 그가 선물로 준 노래 녹음 파일이 생각 나 파일을 재생해 그의 노랫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했던 핸드폰에서 진동과 함께 벨소리가 울려퍼지자 핸드폰을 확인한 나오는 밝아진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앗, 레코 양!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어쩐 일이에요?"

 

"응. 잠깐 시간이 남아서. …저, 나오. 갑자기 이런 말 하기 정말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레코 양의 부탁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뭐든 해야죠! 어떤 건가요?"

 

"그게… 아리스가 감기가 좀 심하게 걸렸는데 지금 집에 아무도 없거든? 거기다 급히 나오느라 죽도 못 끓이고 나왔는데 대신 좀 챙겨줄 수 있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곤 했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말이지…."

 

"네?!"

 

밝은 표정으로 데스 게임에서 친해진 친구와 통화하던 나오는 그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더 이상 그저 함께 탈출한 동료 사이일 뿐만이 아닌 연인 사이인 그가 아픈데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너무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몸이 아프니 혼자 챙기긴 힘들테고 그 상태를 계속 방치했다간 더 심해질 게 뻔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픽 쓰러져버리는 그를 상상해버린 나오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입을 열었다.

 

"주, 죽이야 제가 끓여드릴 수 있지만 문을 열어주실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안 계시는데 그렇다고 아리스 씨한테 부탁했다가 쓰러지시면 어떡하죠?! 그리고 제가 챙겨드렸는데도 안 나으면…?!"

 

"지, 진정해 나오…! 그냥 죽이랑 약만 먹고 푹 쉬면 낫는 정도고 집 비밀번호도 내가 보내줄테니까…!"

 

"하, 하지만…!"

 

"…너무 걱정 마, 나오. 걔가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니고 이젠 나오 네가 아리스의 여자친구잖아? 설마 여자친구가 정성스레 챙겨주는데 안 낫겠어?"

 

"그야 제가… 에, 에? 아, 아니 그, 그러니까"

 

후훗. 그럼 부탁할게 나오.

 

얘기하던 도중 '아리스의 여자친구' 라는 말에 화악 얼굴이 붉어져선 어버버 거리던 나오는 곧 통화가 끊어지자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주방으로 나왔다. 바로 죽을 끓이고 밀폐 용기에, 그리고 종이백에 담아 그것을 꽉 쥐고 집에서 나와 그에게로 향한 나오는 그의 집에 도착하자 친구가 보내준 문자대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실례 하겠다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낮인데도 집 안은 어둡고 조용했고 중간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자 비틀대며 힘겹게 이쪽으로 오는 그가 있었다.

 

"레코 왔… 나, 나오?! 네가 왜…?"

 

"레코 양이 아리스 씨가 아프시다고 해서 왔죠…! 그보다도 어서 다시 침대에 누워 계세요! 몸 상태도 안 좋으신데 누워서 쉬셔야죠!"

 

"…레코가? 아, 자, 잠깐…  부축 해주지 않아도"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어보이는 아리스를 부축해 그를 침대에 눕힌 나오는 주방으로 향했다가 식탁 위에 점심 약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곤 가져온 죽을 꺼냈다. 그리곤 조금 식은 것 같자 예전에 레코와 함께 요리했던 것을 떠올리며 냄비를 찾아 죽을 데워 식기와 쟁반을 꺼내 그에게 돌아왔다. 이렇게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는데 고맙다며 이번엔 부축해주지 않아도 된다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에 나오는 잠깐 기다려달라고 한 뒤 숟가락으로 죽을 퍼 입바람으로 조금 식힌 후 아리스에게 내밀었다.

 

"자, 아- 하세요…!"

 

"자, 잠깐만…! 나 혼자서도 먹을 수 있단다…! 굳이 그렇게 안 해줘도…!"

 

"아- 하세요…!"

 

"…."

 

숟가락을 들고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나오의 행동에 아리스는 끄응 소리를 한 번 내고는 결국 입을 벌려 죽을 받아 먹었다. 그렇게 접시가 깨끗히 비워지자 뿌듯한 표정의 나오가 쟁반을 들고 방에서 나갔고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뜨겁게만 느껴지는 얼굴을 조금 식히고 있던 아리스는 곧 나오가 약을 가져오자 그것을 먹고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곤 침대에 누웠다.

 

"이제 푹 쉬세요. 제가 곁에 있어드릴 테니까… 아, 그래도 혹시 부담스러우시다면 나가있을 게요."

 

물수건을 가져와 그의 이마에 살포시 올려놓고 옆에 앉으려다 아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오는 조용히 손을 내미는 아리스에 거칠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드러운 그의 손을 잡아주곤 곁에서 그를 간호했다.

 

*

 

약 기운 때문에 잠들었다 몸이 많이 나아진 것 같음을 느끼며 잠에서 깬 아리스는 방 안에 자신만 있는 것을 확인하곤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붙어있는 메모지가 눈에 들어오자 그것을 확인하곤 피식 웃었다.

 

[하루 두 알! 죽 남았으니 저녁 때도 잊지 말고 드시고 약도 꼭 챙겨 드세요! 그리고 푹 쉬셔서 빨리 나으셔야 해요…!"